
술을 마신 뒤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얼굴이 붉어지면 술을 잘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알코올에 강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연구에서는 술을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 것이 음주로 인한 암 위험이 낮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얼굴이 안 붉어져도 음주 암 위험이 낮은 것은 아니다
일본 국립병원기구 구리하마의료센터 연구팀은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이 병원에서 처음 알코올의존증 진단을 받은 20~79세 일본인 남성 5214명을 대상으로 암 병력과 유전자형을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알코올 대사와 관련된 ADH1B와 ALDH2 유전자에 주목했습니다.
알코올이 몸속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이 만들어집니다. 이 물질은 독성이 있으며, 음주 후 얼굴이 붉어지는 안면홍조 반응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ALDH2는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데 관여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입니다.
ALDH2의 기능이 떨어지는 유형을 가진 사람은 아세트알데히드가 몸속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연구 대상자 가운데 음주 관련 암 병력이 있었던 사람은 385명이었습니다. 암 종류별로는 위암이 204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장암 80명, 식도암 73명, 두경부암 55명, 간암 31명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유전자형에 따른 차이가 확인됐습니다. ALDH2 비활성형을 가진 사람은 활성형을 가진 사람보다 두경부암과 식도암 위험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구에서 ALDH2 비활성형 보유자의 두경부암 위험은 8.63배, 식도암 위험은 11.35배, 위암 위험은 1.54배 높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얼굴이 붉어지는 정도만으로 자신의 음주 위험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알코올이 몸에 덜 해롭거나 암 위험이 낮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음주 후 얼굴 홍조와 유전자, 왜 차이가 나타날까
연구에서는 ADH1B 유전자 유형에 따라서도 암 위험에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느린 대사형 ADH1B를 가진 사람은 빠른 대사형에 비해 두경부암 위험이 1.99배, 식도암 위험이 3.05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위암 위험은 0.65배로 나타나 암 종류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두 가지 위험 유전자를 함께 가진 사람에서는 차이가 더욱 크게 나타났습니다. 연구 대상자 가운데 264명이 이에 해당했으며, 두 위험 유전자가 없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두경부암 위험은 17배, 식도암 위험은 35배까지 높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러한 수치는 알코올의존증으로 진단받은 일본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이므로 일반인 전체에 동일한 위험도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얼굴 홍조 반응이었습니다. ALDH2 비활성형이면서 느린 대사형 ADH1B를 가진 사람 가운데 52%가 술을 마셔도 얼굴이 붉어진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ALDH2 비활성형이면서 빠른 대사형 ADH1B를 가진 사람에서는 같은 응답이 23%였습니다.
즉, 일부 사람에게는 얼굴이 붉어지는 반응이 오히려 음주에 대한 신체적 경고 신호처럼 나타날 수 있지만,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몸에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특정 유전자 조합에서는 아세트알데히드 대사와 암 위험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주요 관찰 결과입니다.
결국 음주 위험을 판단할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지 여부만 볼 것이 아니라 음주량과 음주 빈도, 개인의 건강 상태와 유전적 특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술을 많이 마시는 습관이 있다면 얼굴 홍조 여부와 관계없이 음주량을 줄이는 것이 건강 관리에 중요합니다.